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
잘 있거라, 짧았던 밤들아
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
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, 잘 있거라
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
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
잘 있거라,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
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
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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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저한 검은 허무주의 시인
기형도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순환에 진저리 친 시인이지만
그러한 허무주의 맥락 속에 자신을 가둬버린 시인이기도 합니다.
그는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기 때문에
시집이라곤 유작으로 내놓은 '입속의 검은 잎' 한 작품 밖에 없지만
그의 사유와 요절로 거둬진 삶의 배경들이 혼합되어
현재 가장 유명한 시집으로 뽑히고 있습니다.
그의 문장은 해석이 어려운 관념적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
그런 언어로 하여금 독자들은 한 없이 깊은 불안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됩니다.
아마 그것은 젊은 시인이 생전에 도피처로 사용했던, 그리고 그 속에서 자멸했던 깊은 동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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빈집
(승민) 아 소심한 것도 죄라
189.